▲민주적인 리더십, 투명한 재정운용, 연합과 연대의 강화. 개혁운동이 어떤 결실을
거둘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부건물 앞에서 드린 노상예배

10월 14일 주일 오후 2시, 전국에서 모인 약 500여명의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회원들이 종로에 있는 본부 건물 앞 공원에서 노상예배를 드렸다. 평소 지역 교회에 가지도 않고 각 센터별로 자신들끼리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UBF가 이날은 각자의 예배 처소를 떠나 한데 모인 것이다. 물론 이날 예배도 UBF만의 예배이기도 하고, UBF 내에서도 반쪽 짜리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시편 51편 17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고이삭 목자는 순종·긍휼·회개의 제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UBF 세계대표인 이사무엘 선교사를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40년 전인 1961년 한국에서 자생한 대학생선교단체의 설립자이며 실질적 리더이자 이 단체의 최고 어른을, 젊음을 다 바쳐 충성하고 헌신했던 제자가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날 노상예배가 열리기 열흘 전인 10월 5일, UBF 법인이사회는 UBF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소위 ‘유실협'(UBF개혁실천협의회) 상임위원 11명과 그들의 아내 3명등 모두 14명을 제명했다. 대학캠퍼스에서 선교사역을 위해 20년, 30년 인생을 다 쏟아 부었던 이들이 제명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이들이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자 조직의 최고 수장을 비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적 질서 무시하고 지도자 비방한 것이 제명 사유

▲이날 노상예배가 열리기 열흘 전인 10월 5일, UBF 법인이사회는 UBF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소위 ‘유실협'(UBF개혁실천협의회) 상임위원 11명과 그들의 아내 3명등 모두 14명을 제명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우선 UBF 본부측에서 발표한 제명 사유를 살펴보자. 이사회는 크게 여덟 가지 이유를 들어 이들을 제명했다. 지난해 4월 ‘UBF발전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세계선교보고대회 철회를 요구하는가 하면, 본부의 승인 없이 홈페이지를 따로 운영하면서 본부와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기사를 수도 없이 실었다는 것이다. 또 ‘말씀과 기도와 대화로 해결하자’는 제안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별도의 모임을 갖는가 하면, 사태 수습을 위한 6인 특별위원회의 합의사항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 유럽 국제 수양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겼고, 7월부터는 아예 조직을 따로 만들어 독자적인 행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1월에 한국·미국·독일 대표들이 이미 UBF를 탈퇴한 7명과 만나 소위 ‘세계 개혁 UBF 대표자 수양회’를 가졌으며, 정기총회에 불참함으로써 회원 정족수 미달로 총회가 무산됐고, 자체적으로 본부 사무실을 개설하고 신문을 발간하고 성경묵상집 <일용할 양식>을 독자적으로 발간하고, 십일조 헌금을 본부에 송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선교 40주년 대회를 한국에서 따로 열었고, <뉴스앤조이> 등 교계신문에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는 기사를 쓰게 했다는 점과, 10월 5일 오전 11시 교계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점도 징계 사유에 포함시켰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유실협이 UBF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복음역사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이사회는 “그 동안 ‘하나’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렸으나, 이제는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실협은 제명 사유의 부당함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졌다.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세계총재 이사무엘 선교사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과 양들에게 편지를 보내, 스텝목자들을 허위사실로 비난함으로써 그들에게 불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개혁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 홈페이지 운영은 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별도의 모임을 갖는 것은 6인 특별위원회에서 허용된 사항이고, 유럽 국제 수양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주장도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총회 참석 여부는 회원들의 기본권이며, 십일조가 공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가 먼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실협은 징계 사유에 대해 하나하나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맞받아치고 있다. 또 이사무엘 선교사가 먼저 스텝 목자들을 비난하는 내용을 쓴 편지 수 천 통을 국내외 선교사들에게 발송함으로써 사건이 시작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사무엘 선교사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유실협이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작년 봄부터 지금까지 지난 1년 6개월여의 유실협 행보를 보면, 어떤 조직에서라도 징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극상을 저지르고 배신행위를 한 조직원을 축출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 되면 좋겠지만, 상황이 그리 만만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배신행위 이면에 감춰진 진실들을 하나하나 뒤집어 보노라면, 이번 사건이 단지 이번뿐 아니라 76년과 89년에도 똑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충격적인 현장을 만나게 된다.

‘엽기적’인 훈련 사례

▲뉴스앤조이 19호 표지이야기
UBF “베일에 싸인 현장을 가다”

97년 <영적 학대>라는 책이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됐다. <영적 …>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사이비 집단 연구 권위자인 로널드 엔로스 박사가, 영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이뤄지고 있는 영적 학대의 실상들과 문제점을 파헤친 책이다. 이 책에는 여러 종교단체에서 벌어지는 학대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 1980년대 톰이라고 하는 미국의 한 대학생이 UBF에서 경험한 얘기가 나온다.

‘톰은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따서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UBF에서는 그것이 ‘죄악된 이기심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계획을 포기할 것을 요구받았다. 또 제자양육 사역을 위해 부모의 곁을 떠나라는 압력도 받았다. 부모와 맺은 인간관계를 끊는 것과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같은 맥락으로 연결되도록 의식화가 된 것이다. 전형적인 이원론적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데에는 강력하고 다양한 의식화 훈련이 뒷받침했다. 수 차례 암기와 받아쓰기를 거쳐 이사무엘 선교사의 메시지를 그대로 발표하는 ‘메시지 훈련’서부터, 온갖 음식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도록 하는 이른바 ‘식사 훈련’과 ‘국제 위 훈련’도 받았다.

문제는 자기가 받았던 방법 그대로 자기 양을 똑같이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개하게 만들려고 밤을 새도록 하고 성경구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막대기로 때리고 정신 차리게 하려고 먼 거리를 달리게 하는 식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사고능력을 사그라지게 했던 바로 그 방법으로 사람들의 반발을 억눌렀던 것이다.’

엽기 소설의 한 장면처럼 여겨지는 이러한 사례들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실제 사람들의 실제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기자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증언은 훨씬 충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이번에 개혁을 부르짖으며 나온 유실협의 스텝 목자 중 한 사람은 ‘목자들이 두 줄로 마주보고 서서 서로 상대방의 따귀를 때리는 훈련(?)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 때 상대 목자의 고막을 터뜨린 것이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이라고 털어놨다. 선교사들에게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편지 내용이 이사무엘 선교사의 성에 차지 않으면 영락없이 ‘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눈이 내리는 겨울 맨발로 시내를 구보하는 것은 보통이다. 10킬로미터든 20킬로미터든 걸어오라고 하면 걸어와야 했다. 몽둥이로 구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차가운 겨울 얼음물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다 훈련의 하나였다.

이쯤 되면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라고 보기 어렵다. 앞에서 소개한 책을 쓴 로널드 엔로스 박사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이비 집단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아무리 설립자요 최고 지도자라고 하지만 자신의 설교문을 베끼는 훈련을 시킨다든지, 국제 수양회 때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의 설교문을 낭독하도록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어디 이 뿐인가. 이성(異性)간의 데이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모와의 관계도 끊어야 할 판에 이성 관계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결혼도 지시에 따라야

UBF 내에서만 결혼을 하는 수많은 사례도 또 다른 엽기다. 약 20년 전에 UBF를 나온 한 목회자의 경우, 70년대말 이사무엘 선교사의 명령을 받아 당시 독일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던 여 선교사와 결혼을 해야 했다. 신부를 처음 만난 건 결혼 3일 전 김포공항에서였다. 부모는 결혼식 하루 전날에야 통보를 받았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고 부모들은 난리를 쳤지만, 워낙 참하고 똑똑하게 생긴 신부를 보고는 부모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열흘간의 신혼여행 기간에 서로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신부는 열흘 뒤에 독일로 돌아갔다. 긴 세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연애기간을 보냈고, 1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만나 정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이게 이단집단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정상적인 기독교단체에서 있을 수 있겠냐”고 스스로 반문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명을 위한 대가로 생각하고 넉넉히 감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들은 UBF 내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76년도에 첫 번째 개혁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엽기적인 행각은 아마 지금도 계속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경우 이사무엘 선교사가 미국으로 떠난 76년부터 이러한 비인격적인 훈련방식과 비상식적인 사건들은 꽤 많이 사라졌다. 미국에서 쓰여진 그 책을 보노라면, 그곳에서는 여전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비인격적 훈련이 최근까지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6년 1차 반란사건을 주도했던 한 인사는 “지도자 한 사람의 문제라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풀이했다.

61년 UBF가 전라도 광주에서 처음 시작될 때부터 76년 1차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철저하게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군사정권의 철권 통치에 길들여져 있었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엽기적인 결혼을 했던 그는 “인간에게는 훈련을 기피하는 속성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훈련을 기대하는 속성이 있다”면서 인간의 이중적인 속성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심리적 속성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도 그 공동체 안에서는 그것이 만족이요 행복이 되는 것이다.

국내는 리더십 이양 후 상당부분 개선

이사무엘 선교사가 시카고로 떠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개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폐쇄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쉽게 탈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군사문화로 대변되는 한국 현대사에만 핑계를 돌릴 수는 없다. 또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자기 만족을 하고 있는데 머문다면 그야말로 사교(邪敎)집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짙다. 말씀과 함께 이성에 근거한 보편 상식적 원리를 기초로 다진 뒤 그 위에 자신의 공동체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UBF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정해진다. 어느 선교단체보다 성경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UBF가 성경적 원리에서 어긋난 리더십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신학의 부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몇 가지 예를 보노라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이단 사이비 집단의 행태가 연상된다. 하지만 UBF를 이단이나 사이비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교리나 신학이 없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보수적 관점의 성경해석, 독자적 교리는 없어

UBF의 성경 해석은 철저하게 보수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또 1대1의 강력한 성경공부 덕분에 그들의 성경 실력은 탁월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학원선교단체보다도 말씀과 기도,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오죽하면 복음전도의 사명을 위해, 가족을 떠나는가 하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포기하고 지도자가 정해준 짝과 결혼을 하겠는가.

문제는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성경을 공부하다 보니,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할 만한 신학적 관점과 안목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지도자 한 사람의 리더십과 말씀해석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76년에 첫 번째 개혁을 부르짖었던 이들의 강력한 주장 중 하나가 ‘신학 교육’이었다는 사실, 25년이 지난 지금 개혁측이 신학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UBF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경직성, 더 나아가 한국 교회로부터 이단집단처럼 비춰지는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76년 UBF를 나와 기독대학인회(ESF)를 만든 이승장·안병호·손석태·장창식 목사 등은 모두 국내에서 신학을 마치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대부분 복음주의 학생선교사역의 핵심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다. 이밖에 김세윤·황승룡 박사 등 복음주의권의 저명한 신학자들이나, 쉴터공동체의 석금호 목사, 기윤실의 박득훈 목사, 소설가 조성기 전도사 역시 UBF를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은 모두 UBF와 아픈 마음으로 결별을 해야만 했다. UBF를 떠나고서야 한국교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대해 UBF는 어떻게 생각할까.

유실협을 비판하는 한 목자는 “우리는 세상적으로 유명해지려고 할 욕심은 이미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았다.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양성해서 전세계에 선교사를 보내는데 뼈를 묻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UBF에서 평생을 바치는 사역자들 대부분의 심정을 대변하는 얘기임에 틀림없다. 세상적으로 유명하기 보다는 이름 없이 빛 없이 복음만 전하는 무명인으로 살아가겠노라고 하는 순결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신학교육, 된다 안 된다, 의견 팽팽

아무튼 지금 개혁측은 목자들이 정규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인이사회에서 제명된 유실협 상임위원 대부분은 이미 힘겨운 싸움을 거치면서 신학교를 나왔다. 신학교에 다니다가 발각돼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UBF는 여전히 외부에서 신학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는다. 신학교육을 개방하면 UBF의 노선과 사역방향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센터가 일반 지역교회화하거나 교단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신 올해 봄부터 자체적으로 신학 프로그램(Seminary)을 운영함으로써 UBF의 정체성을 견지해 나가려 하고 있다.

각 센터가 지역교회화하거나 교단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개혁 과제인 교회 및 기관과의 관계 설정이다. 이 대목 때문에 UBF는 오랜 세월 한국 교회의 보편적 정서에서 ‘이단시’ 되어 왔다. UBF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각 센터별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 대학을 졸업한 학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교회와 연결될 만한 고리가 없다. 기존 교회는 UBF에 대해서 당연히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사무엘 선교사는 기존의 교회를 수도 없이 비판했다. 현실적인 면에서 그의 비판은 매우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고 UBF가 기존 교회의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말로는 선교회, 실제로는 교회

다만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선교회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교회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UBF 본부측이든 개혁측이든 UBF가 선교단체로서 분명한 태도를 취할 것이냐 교회로서의 기능도 함께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해 하고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UBF는 교회가 아니고 대학생선교단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주일예배를 독자적으로 드리고 헌금도 UBF에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이다. 개혁측 역시 이 대목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전향적으로 볼 만한 대목은, 수십 년 동안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던 UBF가 최근에는 기윤실, 학복협 등 한국교회의 몇몇 단체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불안한 점이 없지 않다. 2년 전 내부적으로 격론을 겪은 뒤 UBF를 회원으로 받았던 학복협은 ‘3년 이내에 지역 교회로 흩어져 예배를 드리도록 한다’는 꼬리표를 붙여놨는데 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학복협 임원 중 한 사람은 “1년 동안 지켜본 뒤 회원자격을 심사할 계획”이라면서 “조속히 지역교회로 흩어져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즉 계속해서 독자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면 회원 자격이 상실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학복협 상임대표 이승장 목사는 <성서한국을 꿈꾼다>(홍성사)는 책에서 “한국의 학생선교단체들 중 상당수가 해외 선교가 주된 사역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 세계 선교는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이므로, 신자나 교회 모두 복종해야 할 사명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가 할 일과 선교단체의 사역이 구분돼야 한다. 학생선교단체는 해외선교단체와 그 역할이 차별화 돼야 한다. 왜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지적했다. UBF가 교회가 되든 선교회가 되든 내부적으로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다른 단체들과의 아름다운 연합과 연대의 정신은 더욱 더 보강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고민, 졸업 이후 학사운동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학사운동이다. UBF 뿐만 아니라 어느 학원선교단체든지 똑같이 고민하는 문제가 대학을 졸업한 학사들에 대한 정책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가 긴 선교단체일수록 대학생보다는 대학을 졸업한 학사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들에 대한 정책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UBF의 경우, 1대1 말씀훈련과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만이 가장 소중한 가치요 존재 의미였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나 정책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 인생을 다 바쳐 헌신한다고 하는 내용이 캠퍼스사역 아니면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다. UBF 학사 중 한 사람인 박종운 변호사는, 학생 시절에는 학생운동(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운동권’)을 한 뒤 고시 공부를 하다가 UBF에 들어간 경우다. 학생 시절에 이미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거쳤기에, ‘세계선교만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야 할 길은 아니다’라는 상식은 확보해놓은 터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시 공부를 하면서 UBF의 강한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며칠 전 만난 그는 아시아·태평양 기독 변호사들의 한국대회 행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박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 법무법인은 기독 변호사들이 모여 만든 곳으로, 기독교 내에서 법률적인 자문이 필요한 경우 내 일처럼 나서서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 선교단체를 나온 모든 학사들이 세계선교를 할 수는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학사운동은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UBF의 한 시니어 목자는 “지금 UBF를 떠나면 사회적으로는 폐기처분될 존재로 전락한다”는 자조 섞인 평도 했다.

물론 UBF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승장 목사는 앞에 소개한 책에서 “지금까지 한국의 대학생 복음단체들은 학사운동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그러나 “80년 이후 학생선교단체 출신들이 한국누가회(CMF) 기독교사회(TCF) 등을 조직해 활동하기 시작했고, 90년 이후 기독학사들의 직업별 모임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학사운동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다.

돈, 들어가긴 하는데 나오지는 않아

개혁측이 주창하는 개혁 내용 중에 중요한 또 하나가, 재정의 투명한 공개와 집행이다. 개혁측에서는 “이사무엘 선교사가 시카고로 간 뒤 25년간 한번도 제대로 시카고의 재정이 보고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1,5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자비량 선교를 원칙으로 할 뿐 아니라 현지에서 자립을 하든 못하든 일단 본부에 십일조를 내야 한다. “UBF 세계본부가 된 시카고에 쌓인 액수가 공식적인 것만 61억원이 되는데, 그에 대한 수입 지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정 문제는 비단 이번 뿐이 아니다. 76년 1차 개혁 때도 재정의 투명한 운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들은 당시 △구제헌금 전용 △결산장부 미공개 △임의경비 지출 등을 문제 삼았다. 돈 문제가 거론될 때 민감한 사안 중 하나가 법적인 문제다. 유실협 상임위원 중 한 사람은 “이제는 양심선언을 해야 할 때다. 우리도 해외 밀반출 범죄의 공범 아니냐”고 털어놨다. 해외에서 열리는 선교사 대회 때 스텝 목자 한 사람에게 몇 천 불씩 돈을 나눠 가지고 나가거나 들어오게 했다는 것이다. 권력독점과 재정의혹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시카고에서는 개혁측의 집요한 추궁을 원천봉쇄할 만한 이렇다 할 답변이 나오지 않고 있다.

UBF 내부에서의 개혁이 성공하든 양쪽이 분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걷든, 두 곳 모두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시대적 요구 앞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시대를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낙오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UBF의 한 목자는 “이런 내부적인 갈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 평생을 바친 사역자들 특히 어린양들이 실족할까 염려된다”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일견 맞는 말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충격이고 아픔이겠으나, 이를 잘 수용해서 의식의 선진화·리더십의 민주화·정책의 투명화를 일궈낸다면, UBF가 스스로 말하는 ‘역사’는 한층 아름답고 발전된 모습의 UBF를 기록할 것이다.